호주 전력시장의 개황
법인 생활을 할 때는 전력량, 전력매입, 사용량 등 이것들이 결국에는 그냥 재무제표 위의 숫자였다. 매출은 얼마, 원가는 얼마, 파생상품손익은 얼마, 인식시점은 지금인지 등의 정말 기준서적인 것을 봤다. 그런데 에너지 인더로 옮긴 후에는 생각을 반대편에서 해야한다. 밖에서 볼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실제로 이렇게 vulnerable한 시장에서 숫자를 확정짓는 것이 꽤나 어렵다.
호주 전력망
호주 전력망은 크게 세 파이가 있다. 동부와 남부 6개 주 및 준주(QLD, NSW, ACT, VIC, SA, TAS)로 이어지는 National Electricity Market(NEM)이 전체 전력 소비의 약 80%를 담당한다. WA는 여기서 완전히 떨어져 나와 WEM을 따로 돌리고, NT는 본인들의 독립망이 따로 있다. 인구가 적은 내륙은 아예 소규모 Microgrid로 굴러간다.
아무래도 땅이 넓어서 그렇다. 시드니에서 퍼스까지 송전선을 깔 수도 없고, 설령 깐다 해도 유지보수가 불가할 정도의 환경이다. 뉴질랜드의 고속도로가 정비가 하나도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유다. 게다가 호주 동부 송전망은 해안을 따라 길게 뻗은 선형 구조라(위아래로), 한 지점에서 사고가 나면 우회로가 마땅치 않다. 주요 송전 인프라 상당수가 1970~80년대에 지어져 노후화도 심하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가 가격 변동성과 전력망 재구축(Rewiring the Nation) 투자의 배경이 되었다.
전기 공급의 네 단계
호주 전력 공급은 Generation → Transmission → Distribution → Retail로 나뉜다. 발전사업자가 석탄·가스·수력·풍력·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들고, 송전사업자가 초고압 송전망으로 발전소에서 배전망까지 실어 나른다. 송전은 주 별 독점이다. NSW는 TransGrid, VIC는 AusNet, QLD는 Powerlink, SA는 ElectraNet, TAS는 TasNetworks이다. 배전사업자가 중·저압망으로 최종 사용자까지 전기를 배달하면, 마지막으로 소매사업자가 도매시장에서 전기를 사와 소비자와 계약을 맺고 요금을 청구한다.
우리 회사는 마지막 포지션인 리테일이다. AGL, Origin, EnergyAustralia 같은 대형 리테일러가 시장을 잡고 있고, 우리 같은 후발 주자는 그 틈에서 고객을 늘린다. 여기서 중요한 건, 리테일 대부분의 원가가 앞의 세 단계 전부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거진 80% 이상). 도매값, 송전·배전 이용료, 각종 시장 비용이 전부 손익에 들어온다.
공급받는 전력가격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비용을 줄여야 하는 굉장히 niche한 마켓이다. 다만 AGL이나 Origin 같은 네임드들은 석탄 및 가스 발전소를 가지고 있거나, 주정부·지방정부와 독점 계약을 맺어 댐을 이용해 수력발전을 돌리고 있다. 그래서 시장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전력을 구매할 수 있고, 심지어 발전량이 많아지면 우리 같은 회사에 판매하기도 한다.
발전기가 없으면 너무 힘들다. NEM 향 리테일러만 전국에 200개 정도가 있는데, 그 중 80%의 고객을 빅쓰리 리테일러가 가지고 있다.
5분마다 가격이 정해지는 방식
NEM의 도매가(Spot)는 어떻게 정해질까. 발전사업자는 5분 단위 디스패치 간격으로 전력 공급을 입찰한다. 발전기 하나당 최대 10개의 가격대별 용량을 제시할 수 있다. AEMO는 실시간으로 수요를 예측하고, 값싼 발전기부터 순서대로 돌려 수요를 맞춘다. 여기서 수요를 채우는 데 마지막으로 선택된 발전기의 입찰가를 합쳐, 매 5분 동안의 도매가격이 된다. NEM에 참여한 모든 발전기는 이 단일 가격을 똑같이 적용받아 정산된다.
문제는 이 가격의 폭이다. 25/26 회계연도 기준 상한은 MWh당 AUD20,300, 하한은 AUD(1,000)이다. 하한이 음수인데, 해가 강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낮에는 전기가 남아서 발전사들이 돈을 내면서 그리드에 전기를 넣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보통 해가 너무 강하거나 공급이 수요를 뛰어넘는 경우는 태양광이나 풍력, 수력발전기를 아예 돌리지 않기도 한다. 실제로 25년 Q3 QLD에서는 전체 거래 구간의 25.9%가 0원 이하로 찍혔다. 역대 최저 수준이다.
여기에 NEM 5개 지역(NSW·VIC·QLD·SA·TAS)이 각각 다른 가격을 받는다는 점까지 얹으면, 왜 리테일러가 지역마다 다른 리스크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도매가 떨어지는 중
NEM 평균 도매 전력가격은 하락세다. 26년 7월 1일(엊그제) 다시 한 번 도매 전력가와 기타 수반비용을 AEMO에서 발표했는데 전기 가격이 내렸다.
25년 Q3 기준 NEM 평균 도매가격은 MWh당 AUD87로, 전년 동기 대비 27% 낮고 전분기 대비 38% 떨어졌다. 주별로도 NSW $90, VIC $77, QLD $72, SA $104, TAS $91 수준으로 전년보다 18~34%씩 내렸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늘고 가격 변동성이 완화된 결과라고 한다. 다만, 재생에너지를 만드는 데 수반되는 비용이 coal보다 더 큰데 이게 어떻게 전력비를 내렸는지 잘 모르겠다.
특히 변동성 완화가 두드러진다. 25년 Q3 NEM 전체 지역별 총 수익률은 MWh당 AUD155에서 AUD28로 급락했다. AUD300을 넘는 고가격 구간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인데, 그 배경에 배터리가 있다. 지금 호주 배터리 시장은 3년 전에 피크를 찍고 서서히 설치 수요가 내려가는 추세다. 이 추세와 함께 저녁 피크 시간대 배터리 방전이 전년 대비 177%(463MW) 늘면서, 예전 같으면 가격이 튀었을 시간대를 눌러버렸다.
도매가는 떨어졌는데 대부분의 전기회사가 고객에게 청구하는 가격은 유지하거나 올렸다. 전력비는 낮춰 청구하는 반면 다른 비용(서비스비, 유지비 등)을 올려 마진을 더 좋게 만든 것이다. 소비자는 전력비가 내려간 것을 알고 있지만 민영 시장에서 다들 가격을 안내리면 결국 안내린 비용을 내고 사용할 수밖에 없다.
회사 입장에서 도매가가 내려가고 기타 수반비용을 올려서 마진을 높게 가져가는 것은 좋지만, 도매가가 내려간다고 꼭 마진이 좋아지는 것만은 아니다. 소매가와 도매가의 간극에서 또 하나 고려해야 하는 것이 헤지인데, 헤지는 리테일러 원가에서 무시할 수 없다.
전력 리테일의 꽃 헷징
여기서 전기 리테일 회사의 헤징팀이 중요한 포지션이다. 리테일러는 도매시장에서 전기를 사와 소비자에게 판다. 판매가는 대체로 고정돼 있는데 매입가는 5분마다 격차가 극심하다. 이 간극을 방치하면 손익이 날씨와 수요에 따라 출렁인다. 그래서 리테일러는 보통 Contract Market에서 Hedge Contract으로 도매가격 변동을 미리 눌러놓는다. 스왑이나 캡으로 선도거래를 걸어 미래의 매입단가를 고정시키는 것인데, 선도계약을 미리 잘못 걸어 놓으면 우리가 아무리 다른 비용을 잘 줄였더라도 패시브로 특정일 손실을 크게 가져가게 된다.
헷징을 헷징팀이 하면 그 결과를 장부에 반영하는 것은 재무팀인데 IFRS 9호를 사용한다. 한국에서 에너지 산업 감사를 다소 해봤다 해도 동부발전·중부발전·남부발전 감사하는 것 아니고서는 전력 리테일이라는 개념이 생소하기 때문에 에너지 헷징을 해본 사람은 많이 없을 듯 하다. 그런데 어차피 똑같은 파생상품이라 그냥 IFRS 9호 따라서 파생상품평가손익을 손익으로 보낼지 OCI로 보낼지 회계처리하면 된다.
보통 기업들은 KPI 때문에 Retail향, 기업고객향 매출총이익을 구할 때 헷징을 뺀다. 헷징은 아예 Energy Market Risk 본부 등 에너지 거래만 전문으로 하는 팀의 KPI로 따로 빼놓는다. 이 팀이 에너지 트레이딩, 헷징, 잉여전력 판매까지 도맡아 하는 팀이다. 다만, 이런 팀도 회사의 규모가 크고 리소스 투입을 많이 할 수 있어야지 제대로 된 팀이 굴러가는 것 같다.
재생에너지
24년 호주 전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약 36%다. 그런데 주 별 편차가 심하다. SA는 74%, TAS는 95%로 소도시는 사실상 재생에너지로 굴러가는 반면, QLD 29%, WA 19%, NT 8%는 아직 Coal 중심이다. AEMO는 현재 운영 중인 Coal 발전소 대부분이 2035년 이전, 늦어도 2040년 이전에는 전부 문을 닫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도 계속 장려하고 있다. Capacity Investment Scheme(CIS)를 통해 2030년까지 40GW의 신규 용량을 확보할 계획인데, 이 중 14GW가 배터리 같은 청정 저장용량이다. 실제로 호주 BESS 저장용량은 2024년 5.6GWh에서 2027년 102.9GWh로 뛸 전망이고, 대규모 배터리 방전 출력은 2025년 7월 사상 처음 2GW를 넘어섰다(2,045MW). 2023년 최대치 488MW의 네 배가 넘는다. 저장시간도 예전의 1시간 미만에서 지금은 2~4시간, 앞으로는 4~8시간 이상 장기저장(LDES)으로 길어지는 추세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BESS 용량이 늘어나는 곳이 호주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이 NSW인데 2030년까지 40GW 규모의 배터리농장을 CATL이 짓고 있다. AIDC의 가장 큰 수혜자가 시드니가 될 예정(현재 한국도 호주와 비슷한 규모로 AIDC 설비를 확충하는 중).
재생에너지는 coal보다 fluctuation이 더 클 텐데, 이러면 헤징이 더 중요해진다. 가격이 안정되어야지 monthly flux가 봐줄 만한데, 회계처리는 숫자 보고 회계기준대로 처리하면 되지만 나는 이 시장 자체를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다.







